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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푸드에서 들려드리는 조리법 및 건강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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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초밥의 발견
작성자 한성푸드 (ip:)
  • 작성일 2016-11-16 11: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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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95
평점 5점

 

스시 [壽司(수사)]

식초로 간을 한 밥에 생선을 얇게 저민 것이나 달걀 · 채소 · 김 따위를 섞거나 얹거나 말거나 하는 요리.

생선의 역사는 한마디로 ' 보존의 역사' 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냉장고의 역사는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냉장고가 나오기 전까지 생선이란 식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대상은 해안가 마을 사람들 정도가 전부였다.

즉, 생물로 잡아 올려 그 자리에서 조리해 먹었던 사람이 아닌 이상 생선을 즐기기가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해안가가 아닌 지역에서 생선을 맛보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척박한 유통망과 낙후된 보존 방법 사이에서 우리 조상들은 생선을 맛보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선도 저하가 빠른 생선을 맛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생각해 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염장 처리였다.

지금도 우리 밥상에 올라오고 있는 간고등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염장 처리와 함께 애용됐던 것이 건조 처리다.

오징어처럼 단순히 건조하는 방법과 굴비처럼 소금을 뿌려 건조하는 방법 등은 아직도 애용되고 있다.

이런 건조 방식과 달리 황태처럼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는 방법도 있다.

초밥 역시 인류의 이런 생선 보존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초밥의 시작은 생선을 장기간 보존할 목적으로 생선과 전분(밥이나 옥수수 등)을 같이 넣고 발효시킨 것에서 유래한다.

우리가 오늘날 즐겨 먹는 밥 위에 생선을 올려서 먹는 초밥은 냉장고의 실용화, 유통 구조의 변화 이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만약 그 이전에 이런 형태의 초밥을 먹었다면 생선의 선도 저하로 식중독이 큰 사회문제가 됐을 것이다.

초밥은 원래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됐다. 이때의 요리법은 밥을 지을 때 생선을 같이 넣어 자연 발효시켜 먹는 것이었다.

이것이 중국으로 건너가 좁쌀이나 피, 쌀 같은 곡물을 끓인 다음 여기에 염장한 생선(주로 잉어를 소금에 절여 사용했다)을
 
넣어 보관했는데, 젓갈의 형태였다.

이런 방식은 일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후나즈시(붕어 초밥)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 시가 현(滋賀 縣)의 향토 요리인 후나즈시는 비와호(琵琶湖)의 고유종인 니고로부나(ニゴロブナ)를 활용한 요리이다.

만드는 방법은 붕어의 내장을 제거한 다음 소금에 3개월 정도 절인다.

그 후 소금기를 제거하고 내장이 있던 자리에 밥을 채워서 큰 통에 넣어 1~2년 동안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난 다음에는 밥을 빼고 그대로 썰어서 먹거나 여기에 차를 부어 마시는(오차즈케, お茶漬け) 방식으로 먹는다.

오늘날 신선 식품의 대표적인 예로 불리는 초밥이지만 그 시작은 생선의 장기 보존을 염두에 둔 발효 음식이었던 것이다.



숙성 초밥 전성기

일본에서 후나즈시를 먹었던 기록은 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후나즈시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일부 귀족에 국한돼 있었다.

당시의 식량 사정을 보면(막부시절 다이묘들의 음식상은 의외로 간소했다.

당시 일본의 먹거리 사정과 음식 조리법은 지금 시점으로 보면 열악했다) 후나즈시는 사치 중에 사치였다.

발효를 위해 밥을 생선 뱃속에 넣었다 빼버린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호화스러웠다.

이런 고급 음식이 대중화된 것은 13세기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이때는 향유 계층이 조금 넓어졌다.

귀족만 먹던 후나즈시를 사무라이나 부유한 상인들도 즐기기 시작한 정도였다). 이 시기가 무로마치막부(1336~1573)
 
시절이었다. 그러고도 후나즈시는 좀 더 대중화되기 위한 진화를 겪었다.


첫째, 발효 기간을 줄였다.

생선의 염장 기간인 3개월은 줄일 수 없지만 1~2년에 걸친 발효 기간은 줄여보자는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개별 단가가 올라가는 것은 상식 아닌가?

이때 등장한 방법이 생선 뱃속에 넣는 밥에 술이나 누룩을 넣어 인위적으로 발효 기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둘째, 재료를 재활용했다.

후나즈시가 사치품이 된 것은 바로 밥에 있었다.

그냥 먹기에도 아까운 밥을 발효를 위해 1년이나 묵혔다 버리는 것은 낭비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밥을 재활용하기 위해 후나즈시가 완성되기 전에 발효를 멈췄다.

그런 다음 후나즈시를 먹었던 것이다. 생선과 밥을 같이 먹겠다는 발상이다.

이때 부족한 발효 기간만큼 보충하는 방법으로 나온 것이 식초였다. 후나즈시에 식초를 넣어 먹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초밥의 시작이었다.



후나즈시의 뒤를 이은 것이 일본 초밥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나레즈시다.

나레즈시는 후나즈시와 오늘날 초밥의 중간 정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소금에 절인 생선을 대나무 잎에 돌돌 말아서
 
밥과 함께 자연적으로 발효시켜 먹는 방식이었다.

이제 밥과 생선을 동시에 먹는 방식으로 완전히 정착된 것이다.

나레즈시는 뒤이어 봉초밥(봉 모양으로 만든 스시 밥에 식초로 간을 한 고등어, 다시마를 순서대로 얹어 대나무 껍질로 힘주어
 
꽉 만다), 하코즈시(箱?, 상자초밥)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하코즈시의 경우는 대중화의 선봉이라 말할 수 있는 초밥이었다.

하코즈시의 제조법을 보면 오늘날의 패스트푸드점의 모습과 비슷하다.

초밥 틀에 생선이나 어패류(새우, 고등어, 공미리, 계란구이 등)를 깔고 그 위에 초밥을 얹고 누르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이것을 뒤집어 재료가 위쪽으로 오게 하고 칼질을 하면 끝이었다.

말 그대로 ' 찍어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든 하코즈시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초밥은 숙성 초밥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선한 생선살로 만들어진 초밥의 등장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길거리에서 사 먹는 대중 음식으로 19세기 초, 쌀을 기반으로 움직이던 일본의 경제가 화폐 상품 경제로 뒤바뀌면서 경제는
 
팽창하게 된다.이 덕분에 등장한 계층이 바로 조닌(町人, 상공업자)이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이미 무사 계급을 위협할 정도의(능가한다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부를 축적했지만 신분적으로는
 
여전히 무사 계급에 밀리는 상황이었다. 유럽에서는 이런 신흥 세력을 부르주아라고 불렀다. 그렇다. 조닌은 일본의 부르주아였다.

유럽의 부르주아가 혁명을 일으켜 신분 상승의 꿈을 실현시켰다면 일본의 조닌은 현실 만족 혹은 현실 탈출로 자신들의 사회적
 
욕구를 억제했다.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안겨다 준 우키요에(浮世繪, 14~19세기 서민 생활을 기조로 해 제작된 회화)도
 
조닌 덕분에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조닌이 주축이 되어 19세기 초 일본 에도(江戶, 도쿄의 옛 이름)에 미식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된다('에도 미식시대' 라고
 
부른다).

이때 등장한 음식들을 보면 장어구이, 덴뿌라, 메밀국수, 그리고 지금 우리가 즐겨먹는 초밥의 완성형인 니기리즈시(にぎりずし)
 
였다.

니기리즈시를 직역하면 ' 쥠 초밥' 혹은 ' 주먹 초밥' 이 된다. 니기리(にぎり)란 ' 손에 쥠' 이라는 뜻이기에 쥠 초밥이 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하코즈시가 틀에 넣어 찍어냈다면 니기리즈시는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었다. 차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니기리즈시는 발효를 하지 않고 밥에 식초를 섞어서 만들었다.

이는 에도 사람들의 급한 성격이 반영된 것으로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덕분에 니기리즈시는 빠르다는 뜻의 '하야즈시' 라고도 불렸다.

니기리즈시는 에도 만에서 잡히는 풍부한 어패류와 조닌 계층이 주축이 돼 불러일으킨 미식 열풍, 에도 사람들의 급한 성격 등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탄생했다.

이때 오늘날 우리가 먹는 초밥의 형태로 ' 거의' 완성이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 초밥과 이 당시 등장한 니기리즈시와의 차이는 크기에 있었다. 당시 니기리즈시의 사이즈는 주먹밥만 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패스트푸드의 느낌이 강했던 니기리즈시는 한입에 들어갈 만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이러던 것이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반으로 잘라서 내놓게 된 것이다.

오늘날 초밥집을 가면 한 접시에 초밥이 두 개 나오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연원한 것이다.

초밥이라고 하면 신선함을 우선하는 식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시작은 생선의 보존을 위한 발효 식품이었다는 것이 이채롭다.

 

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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